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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보편적 즉위의례의 추구 - 嗣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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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s

이현욱

Advisor
문중양
Major
인문대학 국사학과
Issue Date
2014-02
Publisher
서울대학교 대학원
Keywords
사위세종실록 오례시왕지제고제제후국 분의보편의례 추구
Description
학위논문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 국사학과, 2014. 2. 문중양.
Abstract
조선초기 太宗과 世宗代에는 儀禮, 官制 등 각종 제도의 정비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제도 정비는 고려의 구제도들을 일신하고 조선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明의 諸侯國 조선의 格에 합당한 제도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제도정비 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국왕의 卽位儀禮인 嗣位 역시 포함되었고, 이것은 세종대 후반에 들어서 완성되었다. 사위 역시 조선초기 제도정비의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그 사실들은 冕服, 傳位遺敎, 大寶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새 국왕은 명 황제가 내려준 면복을 입고 즉위하였다. 즉위식에서 입을 禮服을 선택함에 있어 면복과 喪服을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古制와 時王之制가 동시에 지지하는 면복을 입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구체적인 형태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면복은 古今에 통용되는 형식으로서 즉위식에 맞는 예복이라 판단한 것이다. 이와 함께 명의 제후국이라는 위상에 맞도록 명에서 내려준 면복을 입었다. 이를 통해 조선은 동아시아의 역사와 당시의 질서에 부합하는 의례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전위유교는 후계자를 지명하는 大行王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를 통해 새 국왕 즉위의 정당성을 뒷받침한다. 새 국왕이 대행왕의 전위유교를 받는 과정은 古典에 기록되어 있는 의례로서, 당대 조선인들은 이 절차의 실행을 이상적 제도의 구현이라 인식하고 있었다.
대보는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儀物로서, 이는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를 통해 공유된 인식이다. 조선은 명에서 받은 朝鮮國王之印을 대보라 부르며 그것이 조선 국왕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도록 하였다. 또한 조선에서 만든 국왕의 다른 印章들을 대보를 모델로 하여 주조함으로써 제후국 分義 역시 충족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고제와 시왕지제를 기준으로 하여 완성된 조선의 嗣位禮를 통해서 太祖로부터 시작된 조선의 天命이 계승되었고, 동시에 면복과 전위유교, 대보는 조선의 천명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의 제도를 스스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천명을 받아 세워진 나라였기에 가능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의 제도를 만드는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자 근거가 되는 것이 고제와 시왕지제였다. 제후국 분의도 경우에 따라 타당한 제도 실현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세종대에 제정된 사위례는 보편적 문물제도의 구현이라는 조선초기 당대인들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Language
Korean
URI
https://hdl.handle.net/10371/13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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